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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Enduring Hope of Jane Goodall

Ciara Nugent (14page) 2021-10-11




* 이 글은 번역글로써 원문에 나타난 글쓴이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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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구달의 계속되는 희망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제인 구달(Jane Goodall)이 6살 무렵, 그녀는 요란한 공습경보 소리에 종종 잠에서 깨곤 했다. 사이렌 소리는 구달의 가족이 전쟁 발발 후 이사 온 영국 해안가 마을 본머스(Bournemouth) 지역 상공을 나치 전투기가 비행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구달의 여동생인 쥬디(Judy)는 잽싸게 일어나 계단을 뛰어내려가 방공호로 대피했다. 그러나 구달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침대에서 내려가기 싫었어요.” 구달이 말했다. ”그래서 가족들이 침대보 채로 나를 들어서 아래로 옮겨야 했지요.”
80년이 지나 현재 87세가 된 구달은 그 시절에 살던 저택의 거실에 서 있다. 이 저택은 인상적인 빅토리아 시대 스타일의 건물로 동굴 같은 천정과, 두꺼운 카펫이 깔려 있고 무거운 암 체어가 놓여 있다. 방공호는 여전히 그 곳에 있으나 이제는 세탁기와 냉장고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저택의 다른 곳에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동물 연구가인 구달의 평생의 기념품인 책과 작은 장식품, 사진으로 가득 찬 목재 책장이 있다. 이 저택은 그녀의 조모가 1930년대에 구매했으며 구달의 가족이 수 년간 지내면서 모아둔 장식품으로 가득하다.
9월 말 어느 아침, 카메라맨들이 저택에 들어와 정원에서 찍을 사진에 놓을 만한 가구를 찾으며 이 방 저 방을 돌아다니고 있다. 구달은 팔짱을 끼고 눈썹을 치켜 올린 채 이를 가만히 지켜본다. 소란한 가운데 그녀의 목소리가 들린다. 부드러운 말투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구달은 그녀가 좋아하는 장소인 다락방 침실에서 사진을 촬영할 것을 제안한다. 그녀는 전쟁 때 침대에 꿈쩍없이 누워 있던 소녀 시절의 고집스러움을 내보이며, 승리한 듯한 표정으로 스태프들을 위 층으로 이끌었다.
구달의 조용한 결단력은 일생 동안 다른 이들이 모여들 때까지 그녀를 기다리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1960년, 그녀는 26세의 나이로 탄자니아의 숲 속에 수 개월간 머무르며 침팬지가 그녀의 존재를 받아들여 더욱 가까이 관찰할 수 있도록 때를 기다렸다. 드디어 침팬지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게 된 그녀는 그들이 도구를 사용한다는 것과, 동물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전환시키는 중대한 발견으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62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동물 행동에 관한 연구로 박사 과정을 밟으면서 교수들이 침팬지를 묘사할 때 사람 이름을 붙이고 사람의 감정으로 침팬지를 표현하는 것에 대해 그녀를 비판했을 때도, 구달은 “나는 이에 정면으로 맞서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제 생각에 옳은 것을 계속해 나갔지요.”라고 회상했다. 이후 그녀가 관찰한 바를 보다 과학적인 언어로 설명하는 방법을 익혔지만, 침팬지가 지능이 높으며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그녀의 주장은 이제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침팬지를 실험용으로 사용하는 것에 보다 엄격한 규정을 만드는 기반이 되었다.
1980년대 구달이 연구에서 운동가로 전환했을 때, 그녀의 꾸준하고 공격적이지 않은 접근 방식은 구달을 현대사에서 가장 왕성한 환경 운동가로 만들어 주었다. 구달은 여성이 홀로 야생 동물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파워풀한 이미지를 자신의 이야기로 이용하며 환경 보호주의가 그저 비주류 활동으로 여겨지던 시절에 사람들이 그녀의 이야기에 열광하도록 만들었다. 1977년 설립한 제인 구달 협회(Jane Goodall Institute)를 통해 구달은 서식지 보호 프로젝트 및 빈곤 퇴치 프로그램, 동물 보호구역 설립을 위한 기금을 모금했다. JGI는 현재 미국에서 아랍 에미레이츠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24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으며 그녀는 2004년 영국 왕실로부터 데임(Dame) 작위를 받았다.

세계를 종횡무진 할 때마다, 그녀는 역사, 동물 행동, 인류의 독창성 등 셀 수 없이 새로운 이야기를 레퍼토리에 더해 나갔다. 시위가 아닌 이러한 이야기들이 그녀의 캠페인 도구가 되었다. “제가 동의하지 않는 누군가의 생각을 바꾸고자 한다면, 내가 그들보다 고결하다는 태도를 보이지는 않을 겁니다.” 구달은 아끼는 암 체어에 걸터앉아 이렇게 말했다.”마음을 건드려야 합니다. 저는 스토리텔링을 통해 그렇게 해 왔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