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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xt Generation Leaders
Anthony Ramos Is Just Getting Started

ANDREW R. CHOW (80PAGE) 2021-06-07




* 이 글은 번역글로써 원문에 나타난 글쓴이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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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세대 리더 앤써니 라모스의 시작은 지금부터
앤서니 라모스는 다재 다능하지만, 가만히 앉아있어야 하는 것은 그에게 힘든 일이다. 지난 29년간 그는 쉴 새 없이 움직여 왔다. 달러 한 장을 얻으러 다니던 브루클린에서의 어린 시절을 지나, 뮤지컬 극단의 투어로 미국 전역을 다니기도 했고, 주 8회 공연되는 해밀턴 무대에 오르면서도 곡을 쓰느라 밤을 꼬박 새기도 하고, 캐스팅 디렉터들을 엘리베이터까지 쫓아다니기도 했다. “빨리 생각하고, 행동하자. 제 머릿속엔 항상 그런 생각 뿐이었어요.” 지난5월에 가진 줌 인터뷰에서 앤서니 라모스가 말했다.
앤서니 라모스가 인터뷰를 하는 지금 움직일 수 없는 이유는, 그럴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지금 몬트리올에서 14일간의 격리 기간을 보내며 곧 있을 커다란 프로젝트를 기다리고 있다. 그는 아직 타이틀이 정해지지 않은 영화 ‘트랜스포머’ 후속편의 주연을 맡게 되었다. 에어비앤비에서 격리 중인 라모스는 들뜬 마음으로 다가올 날들을 기다리고 있다: 폭발로 잘 알려진, 공식으로 이끌어 나가는 이 영화 시리즈에서 그의 역할을 어떻게 연기할 것인지 구상해보는 동시에 그는 다가올 콘서트 투어도 구상하고, 동시에 두 번째 팝 R&B 앨범의 마무리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일들에 앞서, 라모스는 다가오는 6월 11일부터 HBO 맥스 채널과 극장 동시 상영이 예정된, 올 여름 가장 기대되는 블록버스터 ‘인 더 하이츠(In the Heights)’로 수백만 관객을 만난다. 이 작품은 존 M. 추(John M.Chu)가 감독을 맡았으며 워너 브로스가 판권을 획득했다. 이 작품은 지난 2008년 토니 어워드를 수상한 린- 마누엘 미란다(Lin-Manuel Miranda)와 키아라 알레그리아 후데스(Quiara Alegria Huds)의 뮤지컬을 각색한 작품으로 어퍼 맨해튼 남미 이민자 커뮤니티의 열정적인 문화와 드라마를 생동감 있게 전달하는 작품으로 앤서니 라모스의 다양한 면모를 보여줄 것이다. 이 작품은 라모스의 어린 시절의 떠올리게 하는 이민자 커뮤니티의 이야기이며 라티노 문화를 보여주는 뮤지컬이 거의 없던 시절, 10대 소년이었던 라모스를 뮤지컬 세계에 발 들여놓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또한 이 영화는 라모스가 그의 멘토인 미란다의 뒤를 잇는 작업이기도 하다. 미란다는 약 10년전 이 영화 제작이 수포로 돌아가기 전에 라모스가 맡게 될 주연 배역인 우스나비— 도미니카 공화국으로 돌아갈 꿈을 품고 있는 불운한 술집 주인— 역할을 연기할 예정이었다. 미란다와 같은 배우들이 지난 세월 열심히 싸워 온 결과 이제 라모스 같은 라틴계 배우들이 영화의 주역을 맡을 수 있게 된 것이다 – 라모스 또한 차세대 라틴계 배우들을 위한 길을 닦아 놓으려 한다. “제가 가장 감사한 점은 저에게 주어진 기회가 또 다른 유색 인종 배우들이 주연을 맡게 되는 발판이 될 거라는 점이에요. 유색 인종 배우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큰 무대에서 펼치는 건 좀처럼 없던 일이죠.”
라모스는 푸에르토 리코 출신인 홀어머니 밑에서 3남매로 성장했다. 뉴욕시의 저소득층 공공 주택 구역인 부쉬윅 하우징 프로젝트(Buschwick Housing Project)에서 자랐던 라모스는 어린 시절, 당장 다음 끼니를 걱정하는 것이 중요했을 뿐 세계를 바꾸고 싶다는 희망 같은 건 없었다.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이 문제였어요. 따뜻한 물이 안 나오는 날도 있었고, 살던 집이 철거될 뻔한 적도 있었고요. 생활력이 강해야 했어요. ’어제는 진한테 25센트 빌렸으니까 내일은 옆집 헬렌 아줌마에게 빌려달라고 해야겠네’하는 식이었죠.“
하지만 라모스는 이런 어린 시절이 그에게 배고픔을 가르쳐 주었다고 생각한다. “말 그대로 그리고 상징적으로도요”- 그리고 이 배고픔이 그를 가차없는 쇼 비즈니스 업계에서 살아남도록 했다. 비록 물질적으로는 가난한 가정이었지만 그가 자란 환경의 풍부한 문화적 영향은 가난함을 상쇄했다. “자메이카, 트리니다드, 푸에르토 리코, 도미니카 등 다양한 곳에서 온 사람들이 함께 있었죠. 항상 음악이 흘렀고 음식도 환상적이었어요, 거리에서 리듬을 느낄 수 있었죠. 생활은 어려웠지만 모험이 가득한 삶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