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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mpeachment Inquiry Is About More Than Donald Trump - It’s About Who We Are as Americans

Jon Meacham (24page) 2019-11-18




* 이 글은 번역글로써 원문에 나타난 글쓴이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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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 조사는 단순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 미국인들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다

■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가능성은 한 남자와 관련된 문제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열정보다 이성을, 믿음보다 진실을, 민족보다 원칙을 우선시할 수 있는가를 시험하는 특별한 순간인 것이다.

알렉시 드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의 고전 <미국의 민주주의(Democracy in America)>가 출간된 이후 거의 반세기쯤 지나 또 다른 유럽인 관찰자가 미국의 상황을 실험하고 평가하기 위해 대서양을 건너왔다.

영국의 역사가이자 국회의원이었던 제임스 브라이스(James Bryce)는 지금 시대와는 달랐던 1880년대 중반 장기 여행 도중 미국에 도착했다. 당시는 도금 시대의 절정이었으며, 미국은 부의 불균등한 분배와 높아지는 이민 비율, 빠른 경제 변화, 그리고 세계무대에서의 미국의 역할에 대해 고심하고 있었다. 노련한 정치가이자 옥스퍼드 대학교(Oxford)에서 민법을 가르치는 명망 있는 교수였으며, 훗날 주미 영국 대사를 역임한 이 영악한 연대기 작가 브라이스는 자신의 생각을 반영한 두 편의 시리즈 작품 <아메리카 공화국(The American Commonwealth)>을 출간했다.

그가 보인 통찰력 가운데에는 변절한 대통령의 위험성을 경고한 것도 있었다. 브라이스에게 있어 헌법을 향해 진짜 위협을 가하는 것은 국민들뿐만 아니라 백악관도 마찬가지였다. 브라이스는 열성적인 대중들의 지지를 얻은 선동적인 대통령의 손에서 빚어진 재난이 미국의 민주주의를 공격할 것이라고 믿었다. 브라이스는 저서에 이렇게 적었다. “자신이 대다수 국민들에게 지지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대담한 대통령은 법 위에 서고 싶다는 유혹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렇게 대중들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대중을 등에 업고 독재자가 되는 것이다.”

이제 21세기의 끝자락에 온 지금, 브라이스의 예언이 실현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득세와 그를 지지하는 국민들의 무조건적인 탄성(彈性)이 미국의 특별한 순간을 만들고 있다. 11월 13일 의회에서 시작되는 탄핵 공청회는 미국을 시험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탄핵과 해임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면서 미국의 눈앞의 미래와 장기적인 앞날은 미국인들이 열정보다 이성을, 믿음보다 진실을, 민족보다 증거를 따라갈 것인가에 달려 있게 되었다.

그리고 진실은 계속해서 쌓인다. 유럽 연합(the European Union) 주재 미국 대사인 고든 손들랜드(Gordon Sondland)는 현재 의회에서 했던 증언을 번복하고 자신이 우크라이나의 보상 문제와 관련되어 있다고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적(政敵)인 조 바이든(Joe Biden)의 가족을 수사했으며, 그렇지 않았다면 미국이 헌법적으로 정당한 군사 원조를 중단했을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주요 관련 인사들이 앞서 했던 다른 비공개 증언들이 알려지고 있으며, 증언을 거부했던 사람들조차 행정부의 거래 제안에 대해 밝히고 있다. 이제까지 의회의 소환을 거부해왔던 믹 멀베이니(Mick Mulvaney) 백악관 비서실장 직무대행은 이미 기자들에게 행정부가 우크라이나를 압박한 사실을 ‘잊어야’ 한다고 말한 순간 어쩌면 가장 큰 의문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이다. 멀베이니는 이후 이러한 발언을 주워 담으려 했지만 애초의 언급은 전 세계를 향한 트럼프 대통령 식의 모든 비전, 곧 ‘원하는 것을 하라, 그리고 아무도 감히 끼어들지 못하게 하라’라는 생각을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민중 선동적이고 무조건적인 당파심과 지속적이고 총제적인 정쟁을 일으키는 홉스주의자들의 세계에 갇혀 있다. 우리는 이렇게 만든 모든 요인들을 알고 있다. 18세기와 19세기에 우리의 사고를 형성한 편파적인 미디어의 귀환, 경합이 이루어지는 하원의원 선거구를 거의 없앤 끈질긴 게리맨더링(gerrymandering), 그리고 예능과 통치 사이의 경계를 희미하게 만들어버린 리얼리티 TV 프로그램의 매력이 그것이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과거를 붙잡는 것을 지향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