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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de Barcelona’s Unfinished Masterpiece

Lisa Abend (28page) 2019-07-08




* 이 글은 번역글로써 원문에 나타난 글쓴이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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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에 자리한 미완성 걸작의 뒷이야기

돌과 철로 만들어진 경이로운 25톤짜리 패널이 거대한 빨간색 크레인 끝에 매달려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 아래 바르셀로나 거리에서는 관광객들이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기념물 중 하나인 이곳에서 끌로 다듬은 거대한 판이 끈에 매달려 올라가는 놀라운 모습을 얼빠진 듯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보다 감격한 사람은 호메 오로미(Jaume Oromí)였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the Sagrada Familia) 건축 책임자 중 한 명인 오로미는 언젠가 바르셀로나의 스카이라인을 새롭게 만들어 낼 성당의 첨탑들이 마침내 하늘에 닿는 모습을 몇 달 동안 지켜봐왔다. 그는 자신의 머리 위 100피트 높이에서 흔들리고 있는 패널을 가리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늘 긴장감이 최고조에 달하는 순간입니다. 머리로는 진행 과정을 다 파악하고 있지만 허공에 수 톤에 달하는 구조물을 끌어올린다는 건 늘 기적처럼 느껴지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전체를 놓고 봐도 마찬가지다. 초석을 놓은 뒤로 130년이 넘게 지나 이제야 드디어 적합한 건축허가를 받게 된 이 성당이 완공되면 바실리카(basilica, 끝 부분이 둥그렇고 내부에 기둥이 두 줄로 서 있는 큰 교회)의 모습을 갖추게 될 것이다. 미완성임에도 전 세계적인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이 성당은 엄청난 기금 모금과 놀라운 기술 혁신, 그리고 전통적인 방식의 세공 솜씨까지 더해지며 성당을 건축한 안토니 가우디(Antoni Gaudí)의 사망 100주기를 맞는 2026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현재 대부분 카탈루냐 사람인 24명이 넘는 건축가들이 이 프로젝트에 매달려 있으며, 총 200명이 넘는 인부들이 건축에 손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성당의 완공은 곧 복잡한 기술과 성당 미완성에 대한 마음의 빚, 그리고 여러 블록에 걸친 근처 거주민들의 분노를 극복했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바르셀로나가 전에 없던 관광객의 유입으로 고심하고 있는 와중에 성당 완공 계획은 사회적 ‧ 정치적 분열을 심화시킬 위험이 있다. 파리의 노트르담 재건축과 마찬가지로 사그라다 파밀리아 완공 프로젝트는 현대 도시에서 상징적이며 역사적인 건축물의 제대로 된 역할에 대한 격렬한 논쟁에 불을 지피는 도화선이 되고 있다.

하지만 아마도 가장 큰 시험은 성당의 모습을 창조한 사람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 현재 기자의 피라미드보다 건축 기간이 6배 이상이 될 성당을 완공하는 어마어마한 임무를 맡은 조르디 파울리(Jordi Faulí) 수석 건축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가우디는 우리에게 길을 남겨 두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때로 그 길을 찾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했습니다.”

가우디는 43년 동안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the Templo Expiatorio de la Sagrada Familia) 건축에 한창 매진 중이던 1926년 당시 혼잡한 바르셀로나 거리에서 전차에 치어 73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원래는 한 종교 기관이 전형적인 네오고딕 양식의 성당을 건축하기 위해 주교 교구의 건축가였던 프란시스코 드 폴라 델 빌라르(Francisco de Paula del Villar)를 고용했었다. 하지만 건축이 시작된 지 1년 만에 빌라르가 사임하자 이 프로젝트는 가우디에게로 넘어갔다. 라 페드레라(La Pedrera)와 구엘 공원(Parc Güell)을 비롯해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상징적인 건축물들을 건설하게 될 가우디였지만 당시만 해도 그의 이름을 딴 것은 가로등 기둥 몇 개와 성지(聖地) 한 곳이 전부였다.

하지만 기존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축 계획을 특별한 야심이 담긴 것으로 바꾸어 자연의 형태와 기독교의 상징주의를 조화시킨 건축물로 만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파울리는 이 성당에 대해 ‘조각과 다른 장식들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건축 그 자체로 의미를 표현한다’고 말했다. 가우디는 건축을 맡을 당시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다. 하지만 건축을 진행하는 동안 점차 독실한 신자가 되었고, 종국에는 이 성당을 기독교 전도를 위한 매개체로 보게 되었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가우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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