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지 타임 time 정기구독 구독신청 02-3675-5543

Memories From the South: Fried Chicken on Race Day

Stephanie Powell Watts(57page) 2018-08-06




* 이 글은 번역글로써 원문에 나타난 글쓴이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정기구독을 하시면 일부 컬럼을 제외한 완역을 보실 수 있습니다.


남쪽에서의 추억 : 레이스 데이(Race Day)에 먹은 프라이드치킨(fried chicken)

레이스 데이에 우리는 노스캐롤라이나 주 노스 윌크스버러(North Wilkesboro)에 있는 패스트푸드 식당인 홀리 팜스 프라이드치킨(Holly Farms Fried Chicken)에 처박혀 있었다. 내가 16번째 생일날 일을 시작했던 곳이었다. 일반적으로 일은 고통스러울 정도로 천천히 진행되었고, 그 덕분에 난 학교가 끝난 뒤 갈색과 빨간색이 섞인 폴리에스테르 유니폼을 입은 채 길고 뜨거운 저녁을 보냈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맞물려 돌아갔고, 매일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똑같은 일상이었다. 가게를 청소하고 (점장이 있을 때는 ‘쉴 시간 있으면 청소나 해’라는 소리를 들었었다), 매장에서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진 창을 통해 마치 어항에 담긴 물고기를 보듯 지나가는 차들을 구경했다. 매장을 서성이면서 무언가 중요하고 신나는 일이 일어나 끝날 것 같지 않은 그 날의 지루한 일상을 깨뜨려주길 기다리며 보낸 지루한 시간들이었다. 그 당시 난 우리 매장에 고용된 유일한 흑인이었다. 1980년대 후반이던 그 때에도 난 그 사실을 신경 쓰지 않았다. 당시 그곳에서는 고용인들 가운데에, 심지어 패스트푸드 식당에서도 흑인이 한 명 뿐인 것이 평범한 일이었다. 많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고향이자 집이라고 부르는 남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1년 중 가장 바쁜 레이스 데이는 달랐다. 손님들은 매장 문을 여는 오전 6시부터 차례대로 줄지어 서 있고, 우리는 치킨과 우리가 사랑하는 바삭한 감자 칩을 바구니에 담아 건네주었다. 레이스 데이인 토요일 아침이면 우리는 쉬는 시간 없이 일했다. 그럼 언제 쉬냐고? 모든 손님들이 자신의 승용차나 트레일러, 또는 트럭을 타고 노스 윌크스버러 고속도로를 달리면 그제야 한 숨 돌리고 자리에 앉아 생각할 시간이 생겼다. 경기는 1940년대 후반 윌크스 카운티(Wilkes County)에서 시작되어 1996년에 중단되었다가 10년 뒤 잠시 재개되었다. 경기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사실 나도 잘 모른다) 주류 밀주업자들이 누가 가장 빠른지를 증명하기 위해 만들어낸 스포츠인 나스카(NASCAR)는 들어봤을 것이다. 그 해에는 격일로 켄터키 프라이드 치킨(Kentucky Fried Chicken)이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패스트푸드 치킨 매장인 것 같았지만 레이스 공식 후원 업체는 홀리 팜스였다. 게다가 우리는 일찍 문을 열었지만 KFC는 그렇지 않았다. 레이스 경기가 있는 날에는 샌드위치나 햄버거가 아닌 치킨을 먹어야 했다. 프라이드치킨은 부담스럽지 않은 동시에 축하의 의미를 가진 음식처럼 느껴지니까.

전국 각지에서 출발한 수천 명의 사람들이 굉음을 내며 지나가는 차를 보고, 먹고, 마시고, 또 마시기 위해 고속도로로 향해 온다. 믿을 만한 소식통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난 단 한 번도 레이스에 가본 적이 없다. 가 본 사람들 중에 흑인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관람석에 있었다고 이야기했던 사람도 없었고, 경기에 참여했다는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레이스 데이에 치킨과 감자 칩 수 천 바구니를 사간 사람들 중에 딱 봐도 유색인종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흑인인 내가 흑인을 봤다면 기억했을 것이다. 노스 윌크스버러는 그 때도 지금도 <앤디 그리피스 쇼(Andy Friffith Show)>의 배경인 메이베리(Mayberry)와는 거리가 멀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모두 알 수는 없는 것이다. 또 다른 흑인을 마주친다는 것은 환영을 받는다는 신호이거나 최소한 긴급한 위험에 처하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이제 고속도로는 사라졌다. 철거되지는 않았지만 부식이 진행된 상태라 현재는 이용되지 않고 있다. 이곳을 되살리는 데에는 거금이 들 것이다. 닭 가공이나 가구 제작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한 이 마을에 부유한 사람은 많지 않다. 홀리 팜스도 타이슨(Tyson)에 매각된 뒤 운영을 중단했고, 건물 자체도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나 역시 더 이상 어린 애가 아니다. 하지만 그 모든 추억들은 오래도록 남아있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 때문이든, 연락 두절 때문이든, 혹은 주위 사람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