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임지 타임 time 정기구독 구독신청 02-3675-5543

50 Years After 1968, We Are Still Living In Its Shadow

Jon Meacham(15page) 2018-01-29




* 이 글은 번역글로써 원문에 나타난 글쓴이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정기구독을 하시면 일부 컬럼을 제외한 완역을 보실 수 있습니다.


1968년이 지나간 지 50년. 우리는 여전히 그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다.
그 자신을 포함한 핵심 인물 중 그 누구도 그가 정말로 그 일을 해낼 거라는 확신은 없었다. 1968년 3월 31일, 린든 B. 존슨(Lyndon B. Johnson)은 오후 9시에 베트남 전쟁에 대해 대국민 담화를 발표할 계획을 세웠다. 그는 담화 말미에 11월에 시행되는 재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내용을 발표하고자 짧은 초안을 작성했다. 존슨 대통령은 이에 대해 가족들과 몇몇 참모들과 대화를 나누었지만 4년 넘게 이어진 전쟁과 소요 이후였기에 이를 신뢰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이 순간에도 숨을 고를 만큼 정치적인 사람이었던 존슨은 오후 시간 동안 선택의 여지를 남겨두었다. 그러던 한 순간, 대통령은 자신의 보좌관인 마빈 왓슨의 사무실에 멈춰 섰다. 전임 노스캐롤라이나 주지사인 테리 샌포드(Terry Sanford)가 1968년 선거를 주관하는 데에 동의한 것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당시 상황에 대해 존슨 대통령의 특별 자문 위원이었던 존 P. 로취(John P. Roche)는 이렇게 회상했다. “테리 샌포드는 그 날 하루 종일 백악관에서 시간을 보낸 뒤 자신이 선거 운동 주관자라는 사실에 깊이 감동하며 공항으로 떠났었죠.” 그로부터 몇 시간 만에 존슨 대통령은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침통한 표정으로 출마를 철회했다. “저는 재임을 위한 저희 당의 대통령 지명은 요구할 생각도 없고 받아들이지도 않으려 합니다.” 로취는 믿을 수가 없었다. 당시 상황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벌써 LBJ ’68 이라는 범퍼 스티커를 차에 붙인 상태였습니다. 게다가 옷에 LBJ ’68이라는 배지(badge)도 달고 있었죠. 처리해야 할 욕 나오는 일들이 15,000 개나 남아 있었단 말입니다.”
분수령이 된 1968년은 놀라움과 반전, 솟구치는 희망과 커지는 공포, 계획 무산과 예상치 못한 새로운 현실이 이어지던 해였다. 우리는 1776년과 1861년, 그리고 1941년처럼 미국 역사상 큰 변화가 일어났던 1968년의 50주년을 맞이하고 있다. 독립 선언과 섬터 요새(Fort Sumter) 전쟁, 진주만 공격과 함께 1968년의 사건들은 무척이나 극적이고 중요하다. 4월의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목사 암살 사건과 6월의 로버트 F. 케네디(Robert F. Kennedy) 대통령 암살 사건에서부터 8월의 민주당 전당 대회 폭력사태와 11월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 당선까지 우리는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1968년의 울부짖음의 긴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다.
우리가 사는 2018년처럼 의기소침한 시기의 만성 우울증을 치료할 목적으로 역사를 문화적 우울증 치료제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과거는 우리가 균형 감각을 유지하도록 도와줄 수 있다. 즉, 앞서 벌어진 일에 대하여 우리가 불만을 갖고 있는 부분을 평가할 틀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반세기 후의 시각에서 1968년을 돌아보면 분명 안심되는 면이 있다. 1968년에 미국에 온 영국 기자들이 쓴 책에는 <아메리칸 멜로드라마(an American Melodrama)>라는 적절한 제목이 붙어 있다. 1968년은 또한 미국이 불가피한 비극을 맞이한 해이기도 했다. 현재 우리는 모든 불행과 광기를, 또한 트럼프 대통령의 시대가 초래한 모든 민족적 갈등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어쨌든 지금 이 시간만큼은) 소모적인 전쟁을 치르지도 않고 있으며, 정치적 폭력은 시시비비를 가리는 논쟁에만 국한되어 있다. 베트남의 설날인 텟(Tet)에 벌어진 전쟁은 트위터에 올리는 그 어떤 글보다 심각했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베트남 전쟁은 1968년의 시작과 함께 그 양상이 심각해졌으며 점점 더 나빠질 상황이었다. 50만 명이 넘는 미군 병력이 그곳에 있었으며, 매일 전사하는 미군의 비율은 46명에 이르러 그 해의 전사자는 총 16,899명에 달했다. 끔찍하고 비극적인 시기였다. 케네디 대통령의 ‘뉴 프론티어(New Frontier)’와 존슨 대통령의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가 제시한 약속들은 동남아의 축축한 정글과 날카로운 부들 사이에서 완전히 허공으로 증발해버린 것 같았다. 3월에 발표한 존슨의 재선 불출마 선언은 극복하기 힘든 전쟁의 결과인 것이 분명했다. 1963년 11월........

아이디 ID저장
비밀번호
회원가입 아이디 / 비밀번호 찾기

/time/includes/homepage_video.xml

Multimedia

Player for home page ra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