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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Negotiator

by ZOHER ABDOOLCARIM and STEPHEN KIM (32page) 201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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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통령이 될 준비를 마친 문재인, 그는 대화를 원한다
1976년 8월 18일 아침, 미군 두 명이 한국 비무장지대(DMZ)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를 하려는 참이었다. 그 나무가 유엔군과 북한 경계초소 사이에서 시야를 가로막았기 때문이었다. 비무장지대란 1950년에 발발한 한국전쟁이 1953년 휴전 협정에 따라 실질적으로 종전된 이래 한반도를 북쪽의 공산주의 국가와 남쪽의 자본주의 국가로 분리하는 길고 가는 띠 모양의 땅을 말한다. 양측 모두 가지를 잘라내는 데 동의했으나 북한에서 작업을 중단시키려고 군인들을 보냈다. 아서 보니파스(Arthur Bonifas) 대위와 마크 배럿(Mark Barrett) 중위가 작업 중단을 거부하자 그들은 도끼로 참살 당했다.
남한에 주둔하던 유엔군 사령관 리처드 G. 스틸웰(Richard G. Stilwell) 장군은 상징적인 조치로서 미루나무를 완전히 베어내라고 명령했다. 벌목을 지원하기 위해 파견된 병력 중에 젊은 군인 문재인이 있었다. 오늘날 그는 긴장감이 극도로 고조되었던 당시의 상황을 “북한에서 벌목을 멈추게 하려고 했다면 바로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묘사한다.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 발발 가능성이 되살아나고 있고, 문재인이 곧 다시 전선에 서게 될지도 모른다. 문재인은 인권변호사 출신으로 64세이며, 박근혜 대통령이 부패 스캔들로 탄핵됨에 따라 오는 5월 9일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의 확실한 선두주자이다. 한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가장 심각한 소득 불평등, 청년 실업 증가, 저성장 등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그러나 선거에서 가장 부각된 쟁점은 북한의 핵 프로그램으로 미국의 새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은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였다. 지난 4월 15일 김정은은 화려한 퍼레이드와 함께 신세대 탄도미사일을 공개했고, 4월 29일에는 미국 해군 타격 부대(트럼프는 ‘함대’라고 칭했다)가 한반도에 도착하기로 한 시간으로부터 단 몇 시간 전에 미사일 발사 시험을 강행하기도 했다. 중국 왕이(Wang Yi) 외교부장은 “언제라도 충돌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경고했다.
따라서 한국의 차기 대통령은 한편에는 성마른 독재자인 김정은과 다른 한편에는 이 지역 정치와 관련해서는 신참인 트럼프 사이에서 심화되는 위기를 떠안게 될 것이다. 그러나 2012년 대선에서 아깝게 낙선한 중도좌파 민주당 후보인 문재인은 70년 만에 두 개의 한국을 더 가깝게 만드는 것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믿는다. “남과 북은 오천 년 동안 하나의 언어와 하나의 문화를 공유한 한 민족이다. 따라서 결국은 통일되어야 한다.”
월남 피난민의 아들인 문재인은 공격이 아닌 신중한 포용 정책을 통해 김정은 정권을 저지하는, 자신만의 길을 걷기로 했다. 그는 지금과 같은 적대적 대립의 악순환은 아무에게도, 특히 은둔의 왕국에서 오랫동안 고통받고 있는 북한 주민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부친은 북쪽에서 도망쳤고 공산주의를 싫어했다. 나 역시 북한의 공산주의 체제를 싫어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북한 주민들이 억압적인 체제 하에서 고통받도록 놔두면 안 된다.”
문재인은 전쟁의 위협 속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1950년 12월 수천 명의 다른 피난민들과 함께 유엔군 보급선을 타고 월남했다. 그리고 2년 후 남한의 거제도에서 문재인이 태어났다. 전후의 남한에는 중공업도 비옥한 농토도 없었다. 당시에는 오히려 북쪽이 더 풍요로웠다. 이제 그는 이렇게 말한다. “빈곤이 제 어린시절을 지배했다. 그러나 좋은 점도 있었다. 또래 친구들에 비해 더 성숙했고, 더 독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돈이 아님을 깨달았다.”
문재인이 막 성인이 될 무렵부터 남한 경제가 풀리기 시작했다. 기술, 자동차, 조선업의 수출 주도 산업이 활발했던 1960년대부터 한국은 빠른 경제 성장을 경험했다. 민주화를 위한 학생운동으로 유명했던 문재인은 1980년 사법시험에 합격했으며, 변호사로서 눈에 띄는 이력을 쌓아가고 있던 중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정부에 합류했다. 오늘날 그가 이끌고자 하는 한국 경제는 GDP 기준 세계 12위인 반면, 인구 2,500만 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