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May Little Note, but Kansas City Still Remembers

David Von Drehle / Kansas City, Mo.(15page) 2017-04-17




* 이 글은 번역글로써 원문에 나타난 글쓴이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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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는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캔자스 시티(Kansas City)는 여전히 그 날을 기억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원했다. 대통령이 각국의 수상과 TV의 시선과 중요 기념일에 대한 기표들을 끌어모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그날이 다가오자 백악관은 2017년 4월 6일 총사령관의 일정으로 중국 기업 회장과 마라라고(Mar-a-Lago)에서 함께 할 것을 요구했다.
미국의 1차 세계대전 참전 100주년 기념행사는 세계 어느 곳 보다 캔자스 시티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 같다. 변혁적이고 비극적인 전쟁은 구세대 유럽의 죽음이라는 극심한 고통 속에서 마지못해 세계 패권 국가로 떠오른 현대 미국을 나타내는 조짐이었다. 그러나 복잡한 이유로 미국의 1차 세계대전 참전은 미국민에게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게티스버그(Gettysburg)와 노르망디(Normandy) 전투는 세대를 되풀이하며 전해졌지만, 아르곤 숲(Argonne Forest)의 전투-1918년 가을 26,000명 이상의 미국인이 목숨을 내놓은-는 마치 새벽이 오면 사라지는 악몽처럼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잊혀진 전쟁은 미저리(Missouri, Mo.) 주의 캔자스 시티에선 중요하게 여겨지는 듯하다. 그래서 공식 기념행사는 워싱턴이 아닌 캔자스에서 열렸다. 캔자스 시티는 1919년 이루 말할 수 없는 대학살 동안에 생성되어 중대한 영향력을 행사한 신념의 물결의 영향을 받아 기념비 비용으로 2주 만에 250만 달러(현재 가치로 대략 3,500만 달러)를 모금한 애국심이 강한 곳이다.
이곳은 국가수반이 모이기에 매우 적합한 장소를 제공할 것이다. 217피트 높이의 자유 기념비에는 전쟁에서 사망한 441명의 지역 주민을 기리는 기념홀(Memory Hall)과 그 옆에 위치한 엄숙한 플라자가 있다. 플라자 반대편에는 작은 전시관이 있다.
1921년 자유 기념비가 있는 장소에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미저리 출신으로 1차 세계 대전 당시 유럽 원정 미군의 대장인 존 J. 퍼싱(John J. Pershing) 장군이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벨기에에서 파견된 장군들과 합류했다. 그보다 계급은 낮았지만, 해리 S. 트루먼 대령(Harry S. Truman)은 시민 정신을 사로잡아 자유 기념비 건설에 불어 넣었다. 옷 가게 주인에서 훗날 대통령이 된 트루먼은 그 당시 장식적인 역할을 하는 부대통령이었다. 그는 기념비 건설로 인해 캔자스 시티가 훗날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도시가 되리라고 예측했다.
페르디난드 포치(Ferdinand Foch) 프랑스 육군 원수는 기념비 건설을 두고, 이러한 애국정신은 그간 본적이 없다고 말했다. 대략 325,000명의 도시 주민 중 100,000명 이상이 헌정식에 참석했다. 그들 중 많은 사람이 지역의 의사로 전투 작전 중에 사망한 첫 번째 미국인인 윌리엄 T. 핏츠사이먼(Captain William T. Fitzsimons) 대령을 추모했을 것이다. 전투에서 마지막으로 사망한 또 다른 지역 주민인 마크 한나(Mark Hanna) 소령을 추모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생긴 지 얼마 안 된 미국 신생도시엔 엄청난 에너지의 시기였다. 미저리 강 하류의 가축 사육장과 정육업자는 미국 전역에 스테이크와 베이컨을 공급했다. 금주법은 재즈 음악과 섹스의 생동감으로 가득한 나이트클럽에서 떠돌던 안 좋은 소문 정도로 치부되었다. 프랑스 출신인 젊은 구급차 운전사였던 월트 디즈니(Walt Disney)도 캔자스로 모여든 사람들 중 하나였다. 20살도 안 되었지만, 전쟁을 겪으면서 성숙해진 그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사업을 시작했다. 디즈니의 캔자스 스튜디오는 오래 가진 않았지만, 그가 이곳에서 친구로 삼은 생쥐는 불멸의 캐릭터를 얻었다.
즉, 모든 것이 최근까지 대평원의 파리(Paris of the Plains)라 불리는 곳에서 일어났다. 치솟는 추모의 열기는 캔자스의 의욕을 명백하게 드러냈을 것이다. 그들이 버텨낸 전쟁이, 100,000명 이상의 미국인의 목숨을 앗아가고 유럽을 대학살로 몰아넣은 그 전쟁이, 더 끔찍한 전쟁의 비참한 서곡에 불과했다는 것을 어찌 알 수 있었을까? 또는 그저 장식적인 부대통령에 불과했던 트루먼이 로마 제국 이래로 가장 거대한 패권 속에서 가장 길게 이어진 평화 시대를 장담할 만큼 강하게 미국이 이끄는 질서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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