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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enspan's legacy offers lessons for today's economic problems

Rana Foroohar (20page) 2016-10-31




* 이 글은 번역글로써 원문에 나타난 글쓴이의 의도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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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스펀의 유산에서 오늘날 경제 문제의 교훈을 배우다
세바스찬 말라비(Sebastian Mallaby)가 내놓은 전 연방준비제도 의장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에 대한 전기, ‘진실을 알고 있던 남자(The Man Who Knew)’는 차라리 ‘진실을 알고 있었지만 행동하지 않은 남자(The Man Who Knoew – And Didn’t Act)’로 바꾸는 게 나을 것이다. 이 책에서 밝히는 요지는 그린스펀이 ‘시장이 가장 잘 안다’는 효율 이론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추종자가 아니라 양적 완화 정책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며, 주가가 폭등하면 심각한 피해를 일으킬 수 있는 버블이 생기리라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그린스펀은 재임하는 동안 양적 완화를 방치했고 정부가 시장에 극적으로 개입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믿도록 내버려 두었다. 대단한 아이러니가 있다면, 그린스펀으로 인해 중앙은행 자체가 국제 시장에서 주요 참가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경제에는 거대하고 알 수 없는 위험이 생겨났다. 그린스펀이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었던 것은 확실하다.
그린스펀의 유산은 오늘날 경제 문제에 대한 교훈을 제공한다. 첫째, 경제는 거의 반드시 개념보다는 실증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얄궂게도 그린스펀은 큰 곤경에 빠져서 이론적 모델보다는 수치를 보기 시작했을 때 가장 큰 깨달음을 얻었다. 예를 들어, 1966년 여름 연방준비제도는 경제 과열을 냉각시키기 위한 이자율 인상을 둘러싼 논쟁에 휘말렸다. 임금이 상승하고 있었고, 주식 시장도 연중 45% 상승했다. 그러나 세계화와 새로운 기술로 인해 기업들이 효율성이 상승한 것을 감안하면 생산성 통계가 이상하리만치 약했다.
이 수수께끼를 푸는 것이 관건이었다. 생산성이 실제로 증가하고 있다면 이자율을 올릴 이유가 없다. 인플레이션을 발생시키지 않고도 생산성이 높은 노동자에게 더 많은 임금을 지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래리 서머스(Larry Summers)에서 재닛 옐런(Janet Yellen)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경제의 대가들이 인플레이션을 걱정했다. 그러나 그린스펀은 연방준비제도 연구자들이 40년간 155개 산업 통계를 다시 계산했다고 주장했다. 결과는? 서비스 생산성이 낮아서 전체 생산성이 왜곡되었다는 그린스펀의 주장은 옳았다. 지금의 연방준비제도 의장 옐런은 그와 비슷한 심층적 데이터 분석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아 그때의 교훈을 가슴에 새기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린스펀, 그리고 경제는 데이터가 부족하고 자존심이 지나치게 높아지자 불안정해졌다. 그린스펀은 1990년대에 운 좋게 짐작이 얻어걸렸고 몇 번 정책으로도 홈런을 날렸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이런 승리 뒤에 따라온 칭찬과 정치적 권력으로 인해 그린스펀은 금리를 인상해서 상황을 움직이고자 하는 의지가 줄어들었다. 한때 정부 구제금융의 완고한 반대자였던 그린스펀은 멕시코와 같은 신흥시장의 구제금융을 지지했다. (그린스펀은 1970년대 포드 대통령 고문을 지낼 때 뉴욕시 구제금융에 반대했다. 포드 대통령 고문 자리는 초창기에 자유의지론적 철학가 아인 랜드(Ayn Rand)에 몰두했던 그에게 잘 맞는 위치였다) 맥시코의 부채는 거대 미국 은행의 책임도 있었다. 자서전에서는 이 중요한 사실을 축소해서 다룬다. 그린스펀은 상품선물거래위원회 의장 브룩슬리 본(Brooksley Born)이 파생상품에 대해 했던 유명한 경고를 무시하고 브룩슬리 생각만큼 폐해가 크지 않다고 생각하는 우를 저질렀다. (하지만, 브룩슬리의 말이 맞았다) 그린스펀은 1990년 말에 시장이 ‘비이성적으로 과열(irrational exuberance)’되었다는 언급으로 경고했지만 안정화되는 듯이 보이자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린스펀은 스타덤을 즐기며 빠른 차를 몰고 아름다운 여성과 데이트를 하고 워싱턴에서 사람들 귀를 즐겁게 해주었다.

그린스펀을 변호하자면 2008년에 금융위기가 왔을 때 그린스펀은 자기 잘못을 인정했다. 하지만 기이하게도 외교 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에서 수석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그린스펀의 협력을 얻어 5년간 책을 집필했던 말라비는 그린스펀은 한 번도 시장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기 때문에 그 사과는 실........